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드리 헵번 (문단 편집) == 위상 == [[캐서린 헵번]]과 [[베티 데이비스]]에 이어 '''[[미국영화연구소]](AFI) 선정 [[https://archive.fo/FYaZ|가장 위대한 여성 배우 3위]]'''에 선정된 인물이며,[* 남배우 3위는 [[제임스 스튜어트]]였다. 둘다 할리우드의 국민배우이자 1990년대에 사망했으며,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은 것이 공통점이다. 그리고 자선활동과 기부활동으로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으며, [[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]]을 받은 것도 같다.] [[에미상]] ∙ [[그래미 어워드]] ∙ [[아카데미상]] ∙ [[토니상]]을 모두 수상한 미국 '''대중문화계의 그랜드슬램([[EGOT]]) 수상자'''이다. 할리우드를 넘어서 클래식 시대의 막바지인 '''1950~60년대를 상징하는 아이콘'''이다. 오드리 헵번은 1950년대~1960년대 초를 상징하는 여배우로, 영화계를 넘어 대중문화계가 현대화되던 시기를 대표하는 슈퍼스타이다. 대중음악계와 비교를 해보자면 1950년대 초 [[프랭크 시나트러]]나 [[냇 킹 콜]] 등의 고전 스탠다드 팝 가수가 유행하던 시절 영화계에 등장하였으며, 1964년 [[비틀즈]]가 처음 등장하여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일으킬 때 오드리 헵번의 최전성기 후반부였고, 비틀즈가 사이키델릭 록, 블루스 록 등으로 장르를 바꾸며 60년대 말 [[하드 록]] 밴드들이 나와 본격적으로 현대적인 대중음악 체계가 형성되던 시기 오드리의 전성기가 끝났다. 또한, 이 시기에 영화계도 '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'라는 새로운 사조가 등장하며 영화 촬영 기법이 현대적으로 넘어가게 된다.[* 아메리칸 뉴웨이브 시네마를 시작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나 졸업은 1967년작으로 이는 오드리 헵번의 전성기가 끝날 때쯤이었다.] 공교롭게도 오드리 헵번이 활동을 줄이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대중문화계는 완전히 현대로 넘어와서 오드리 헵번은 클래식 시대의 마지막 아이콘으로 남게 되었다. [[폴 뉴먼]], [[그레고리 펙]], [[비틀즈]]와 함께 60년대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인물로도 여겨진다. 현재까지도 ''''만인의 연인''''으로 칭송받고 있다. 또한 은퇴 이후에는 [[유니세프]]를 통해 [[개발도상국]]으로 건너가 자선활동과 기부를 꾸준히 하며 난민 구호활동에 노력을 기울이는 제2의 삶을 살아 칭송을 받았고 이를 근거로 1992년 [[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]]의 수훈자가 되었다.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" [[파일:SpiritofAudrey.jpg|width=100%]]}}} || || {{{#fff ''' 'The Spirit of Audrey' '''}}} || ([[뉴욕]] [[유니세프]] 본사 앞에는 오드리 헵번의 업적과 봉사, 희생 정신을 기린 'The Spirit of Audrey'라는 이름의 동상이 서 있다.)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미인 중 한 명이며, 현재까지도 '''세기의 미녀'''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. 20세기 가장 아름다운 여배우를 꼽으라면 1위를 다툴 정도로 눈부신 외모를 가졌다. 오드리 헵번이 선보인 [[메이크업]], 헤어 스타일, 옷차림은 현대에도 꾸준히 유행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. 트레이드마크였던 짙은 눈썹과 큰 눈을 강조한 메이크업은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고, 데뷔작 [[로마의 휴일]]에서 선보인 단발 헤어컷 역시 "헵번 스타일"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. [* 참고로 로마의 휴일에서 보인 스타일은 여성 배우에 있어서 중요한 변곡점로 꼽히는데, 오드리 헵번 이전까지 여성 배우는 여성성을 강조해서 인기를 끈 경향이 강했다. 오드리 헵번은 루이스 브룩스에 이어 중성적이면서 [[보이시]]한 매력으로 히트를 친 케이스에 속하며, 이후 [[진 시버그]]나 [[미아 패로]] 같은 중성적인 여성 배우들이 인기를 얻는데 큰 역할을 했다.] 헵번 스타일은 단순히, 의상, 화장 등뿐 아니라, 영화 속에서의 행동도 포함한다. 대표적으로 <로마의 휴일>에 나온 커피잔을 들 때 잔 받침을 같이 든다는가 [[티파니에서 아침을]]에 나온 창가에 앉아 [[Moon River]]를 부르는 모습 등 어쩌면 말로 표현하기는 극히 어려우면서도 별다를 게 없는 행동이지만, 직접 보면 뭔가 분위기가 다르다는 걸 이해하기가 쉬워진다. [[사브리나]]에서 [[지방시]]의 옷들을 입어서 [[지방시]]를 세계적인 [[패션 하우스]]로 격상시켰으며 [[티파니에서 아침을]]에서 선보인 헤어스타일과 검은색 드레스[*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패셔너블한 LBD (리틀 블랙 드레스) 중 하나로 뽑힌다.], 긴 장갑도 '헵번 드레스'라고 불리며 유명해졌을 만큼 영화배우로 활동한 시기의 오드리 헵번은 한마디로 [[유행]]의 선두주자였다. 그래서 당대의 유명 [[패션]] 디자이너들에게 특히 사랑받은 배우이기도 했다. 사실 1950년대 이후 오드리 헵번이 [[대중문화]]에 워낙 영향을 끼친 부분이 많다 보니, 우리 [[일상]] 생활에도 알게 모르게 정말 영향을 많이 끼친 영화배우다. 반항적이고 파격적인 이미지로 티셔츠와 가죽재킷을 유행시킨 [[말런 브랜도]]와 동시기에 여성 패션 쪽에서 비슷한 역할을 했던 인물로 꼽힌다. 한국에서도 카페나 미용실에만 가도 사진이 걸려있는 곳이 매우 많다. 국내 방송을 보면 종종 오드리 헵번의 사진이 실내 장식으로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다. 초상 사진은 21세기의 [[시크릿#s-7|휴대폰]] 광고에 쓰였을 정도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